하나님은 선하시다! (God is good!)
송금관 목사(사우스패서디나 평강교회)
광야와 동굴과 전쟁 같은 삶의 한복판에서 붙드는 믿음의 고백

전쟁은 사람의 중심을 드러냅니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는 감추어져 있던 영혼의 상태가, 죽음의 위협 앞에서는 더 이상 숨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람이 입술로 내뱉는 한마디는 그가 무엇을 믿고 살아왔는지를 가장 진실하게 증언합니다.
최근 국제 언론을 통해 보도된 한 장면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란의 험준한 산악지대, 자그로스 산맥 일대로 알려진 곳에 미군 장교 한 사람이 홀로 고립되었습니다. 적의 추격, 부상의 고통, 극한의 공포 속에서 그가 본국에 보낸 짧은 무전은 뜻밖에도 구조 요청의 언어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무전은 “God is good”, 곧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이 장교는 격추 후 거의 이틀 가까이 산악지형에서 숨어 움직이며 생존했고, 미국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대규모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을 접하며 저는 곧바로 다윗을 떠올렸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영광의 왕좌보다 광야의 시간으로 더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그는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쳤고, 동굴과 산지에서 숨어 지내야 했으며, 가까운 이의 배신과 적들의 위협 속에서 숱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시편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고백으로 가득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라는 말씀은 형통의 노래가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 속에서 길어 올린 믿음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모든 형편이 풀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다고 고백했습니다.
성경에서 “선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טוֹב, tov)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기분이 좋다거나 무난하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아름답고, 온전하며, 유익하고, 생명을 살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세계를 보시고 “좋았더라” 하셨을 때 쓰인 말이 바로 이 토브(טוֹב, tov)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고백은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친절하시다는 정서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옳으시며, 선하신 목적을 가지시며, 무너진 질서를 다시 바로 세우시는 분이라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선하심을 형통과 연결하여 이해하려고 합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일이 꼬일 때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동굴에서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눈물의 밤에도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상황은 악할 수 있고 환경은 잔혹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십자가는 실패요 수치요 버림받음의 자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은 가장 밝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입증된 사실임을 보여 줍니다. 성도는 이 십자가 때문에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질병 가운데서도, 상실 가운데서도, 인생의 전쟁 한복판에서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배웠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복음의 자유를 노래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깊이 깨달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은 언제나 우리의 편안함과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낮추시고, 선하시기 때문에 광야를 지나게 하시며, 선하시기 때문에 헛된 의지들을 무너뜨리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은 결국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시는 선하신 손길입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는 각자의 산악지대를 지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질병의 산을 넘고 있고, 어떤 이는 관계의 균열 속에 서 있으며, 어떤 이는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 가운데 홀로 버티고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성도가 붙들어야 할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원망도 아니고 체념도 아닙니다. 바로 이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이 고백은 낭만적 위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치열한 믿음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에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에 광야는 마지막 장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에 십자가 뒤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기에 오늘 우리의 눈물 또한 헛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시대가 어두울수록 이 고백을 더 분명히 회복해야 합니다.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정이 아니라 말씀 위에 서며, 현실의 무게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다윗이 그랬고,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으며, 오늘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부디 우리 시대의 성도들의 입술에서도 이 고백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광야에서도, 동굴에서도, 전쟁 같은 삶의 한복판에서도 흔들림 없이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God is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