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교회 목사들이 모두 훌륭한 기도의 용사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수년에 걸친 여러 연구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처치앤서스> 척 로리스 목사는 교회를 이끄는 우리조차도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 몇 가지 그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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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본보기가 부족하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도의 모범이 되어준 세 분의 멘토가 있었다. 이는 매우 큰 축복이었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은 기도의 삶을 직접 보여준 롤모델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
교회는 기도하라고 말하지만, 기도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이는 기도뿐만 아니라 많은 영적 훈련에서도 반복되는 실수다. 기도를 하라고만 강조하고, 실제로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많은 목사들도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된 기도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
신학교에서 기도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
저 역시 신학교에서 기도를 집중적으로 배우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없다. 최근에는 기도를 다루는 강의가 일부 신학교에서 제공되지만, 여전히 그 깊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
우리는 ‘기도자’이기보다 ‘실행자’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은 사역이 필요할 때마다 곧바로 기도로 나아가셨다. “예수의 소문이 점점 더 퍼지매 큰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5:15-16). 하지만 우리는 먼저 사역을 하고, 나중에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
기도를 관계보다는 반응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필요를 들을 때 기도로 반응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단순히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기도하는 일에는 소홀하기 쉽다. 기도가 관계 중심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습관이 되면, 기도의 깊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
우리 힘으로 사역을 너무 많이 감당할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기도 없이도 일정 수준의 사역을 진행할 수 있다. 심지어 가시적인 ‘성공’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기도를 소홀히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우리는 기도의 어려움을 솔직히 말하기 어렵다.
목사로서 영적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기도 생활의 부족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쉽지 않다. 심지어 영적 동반자가 있더라도 기도 부족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만약 여러분도 기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의견을 나누어 주세요.